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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을 기억하다_포스터.jpg



노원문화예술회관 창작레퍼토리 유보배 작 김도형 연출의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

공연명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

공연단체 노원문화예술회관

작가 유보배

연출 김도형

공연일시 2018년 12월 27일 오후 7시 30분

공연장소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관람일시 12월 27일 오후 7시 30분



노원문화예술회관(관장 김승국) 대공연장에서 노원문화예술회관 창작레퍼토리 유보배 작, 김도형 연출의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를 관람했다.

 

유보배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그림자의 시간>으로 전국창작희곡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부산극단 누리에'의 참가작 <그림자의 시간>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상에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유보배 작가의 <아버지 없는 아이>를 대전극단 새벽이 참가 공연해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희곡상, 연출상, 무대예술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유보배는 발전적인 앞날이 기대되는 미녀 작가다.

 

연출을 한 노원연극협회 김도형 회장은 86년 극단 실험극장에서 시작해 국립극단 단원으로도 활약한 중견배우. 고등학교 때 이미 CF모델로 촬영도 하면서 길을 잡았다. 오현경 선생과 부자지간으로 연기한 ‘서산에 해지면 달 떠온다(김수녕 연출, 실험극단)’신숙주 역할로 극단의 호평을 받은 ‘전하(국립극단)’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은‘윤이상 나비 이마주’등 그동안 끊임없이 활동해왔다. 12년부터 노원역 인근에서 액터로드 연기학원을 열어 교육연극과 연기지도를 하고 있다.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에서 ‘산송“으로 대상과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연극은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의 탄생배경과 관련된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 그리고 승려 법정의 이야기다. 

 

백석의 약력을 보면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詩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있었다. 백석이 자야라 불렀던 연인 김영한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그녀의 집안은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알거지가 되어 거리로 나앉게 되었는데 이때 김영한은 열여섯 살의 나이로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는데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시대 환경은 냉정해서 고향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강제로 백석을 자야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다른 여인과 결혼을 시키지만 백석은 자야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강제 결혼을 하고 다시 도망치기를 세 차례. 부모에 대한 효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갈등한 백석은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야에게 만주로 같이 도피하자고 설득하지만 자야는 이를 거절, 백석은 혼자서 만주 신경으로 떠났는데 남북이 분단되어 이것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다.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지낼 때 겨울이 너무 추워 미국에 있는 사찰에 머물면서 책을 번역하고 설법을 하며 지냈는데, 그때 자야 김영한 보살을 만나 1000억을 시주할 테니 대원각을 사찰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대로 조건 없이 시주했고 사찰은 완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부한 1000억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자야 보살은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그 사람, 그는 바로 백석이었다. 김영한, 그녀는 최고의 천재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연인, 자야였다. 그러나 봉건시대의 길목에서 20대에 만난 그들은 비련의 연인들이었다. 백석은 그녀를 위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썼다고 전한다.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는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 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했는데 1997년 10월에 결성된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가 그 첫 사업으로 백석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해 첫 시행은 1999년에 했다.

 

연극은 도입에 나이든 자야가 시집을 들고 등장해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놓인 의자를 보며 다가가 그 의자에 앉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면이 바뀌면 승려 법정이 나무토막으로 의자를 만들고 자야가 이를 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면 연극은 자야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다. 젊은 시절의 자야 역은 젊은 여배우가 맡아서 한다. 암전상태에서 출연자들이 무대를 가로지를 정도의 긴 받침대를 여럿이 함께 이동시키며 등장한다. 조명이 들어오면 긴 대는 권번의 긴 식탁이 된다. 3인의 학교 남자 선생 3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고, 어려보이고 예쁘장한 기생 3인이 아리따운 한복차림으로 등장해 교사들 곁에 앉는다. 중앙에 앉은 미남 교사 옆에 미녀 기생이 동석한다. 기생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는다. 바로 중앙에 자리한 시인 백석은 이 자리에서 시를 지어 읊는다. 백석의 시와 그의 모습에 반한 기생 진향, 진향의 본명은 김영한이다. 이 두 사람이 바로 백석과 후에 백석이 자야라는 이름을 붙여준 기생이자 백석의 평생의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랑이 불붙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백석의 부모는 당시의 환경과 주변의 눈길로 해서 반대를 하고, 백석을 다른 여인과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백석은 자야에게로 되돌아간다. 자야는 처음에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백석의 품에 안기고 만다. 그러나 백석의 부모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지고 반복하기를 되풀이 한다. 그러면서 백석의 시작은 열정을 띤다. 연극에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당시 황소 한 마리 값이 5원이었는데, 백석의 시집 한권이 2원이었다니, 초창기 시인이라는 직함과 시집가격은, 현재로서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베스트셀러 품목이었고, 고가였음을 알 수가 있다. 백석은 친일 시작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해방이 되자 월북을 해 김일성 찬양시작에도 정성을 다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과 북의 분단이 계속되면서 백석과 자야는 다시는 상봉을 못하게 된다. 연극은 도입에서처럼 나이든 자야와 승려 법정이 다시 등장하고 법정이 나무토막으로 만든 의자가 완성이 되자 법정은 의자를 자야에게 선물한다. 그 자리에서 자야는 자신이 경영하던 고급음식점 대원각과 1000억 원을 법정에게 시주하고 성북동 소재 사찰 길상사의 탄생의 계기를 제공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미남배우 김승대가 백석, 미녀배우 허영주가 자야, 경륜과 기량을 겸비한 배우 김순이가 나이든 자야, 연기파 배우 원근희가 승려 법정, 이형주가 허준, 이선영이 금춘, 지민영이 애랑, 유종연이 정근양, 김진아가 옥향으로 출연한다. 출연자 전원의 감정 설정과 호연 그리고 열연은 연극을 수준급으로 상승시킨다. 특히 기생으로 출연한 여성연기자의 발랄함과 약동 그리고 미모는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극 분위기 창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음악 서상완, 무대 김혜지, 조명 박지예, 음향 이승용, 음향오퍼 윤미순, 음향엔지니어 도소미, 안무 김옥희, 움직임 주용필, 의상 최영로, 분장 최정아, 드라마터그 임선빈, 무대감독 손규홍, 조연출 이솔우, 제작참여 노원여늒협회 극단 노원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돋보여, 노원문화예술회관 창작레퍼토리 유보배 작, 김도형 연출의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를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장기공연을 해도 좋을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2월 28일 박정기(朴精機)